범죄단지 관리자 "관 작업 다 돼 있어…신고 우리가 먼저 알아"

현지 경찰 급습하는 단지마다 이미 도주…'미상납' 단지는 단속

"(현지 경찰관에게) '팁'을 안 주면 유치장에서도 생활하기가 힘듭니다. 화장실에 한 번 가려고 해도 돈을 줘야 할 정도예요."

캄보디아 시아누크빌 지방경찰청에 구금된 20대 한국인 A씨는 어렵게 현지 범죄 단지인 '웬치'에서 빠져나왔더니 유치장 생활도 만만치 않다고 토로했다.

그는 범죄 단지에서 6개월가량 감금된 채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범죄에 가담했고, 전기 고문과 폭행을 당하다가 지난달 극적으로 구조됐다.

현지 경찰 조사를 받은 A씨는 한인회 도움으로 현재 휴대전화와 현금을 갖고 유치장에 머물고 있다면서도 부패가 심한 현지 경찰관들이 범죄 조직과도 연결돼 있다고 말했다.

"범죄 단지에서 중국인 관리자들은 '관 작업이 다 돼 있으니 신고하면 우리가 먼저 알 수 있다'고 겁을 줬어요. '파묻거나 소각장에서 태워 버린다'고 협박했습니다."

◇ 수시로 상납하는 범죄 단지…단속 정보 흘려주는 현지 경찰

캄보디아에 사는 교민들은 범죄 조직이 수시로 상납하고 그 대가로 현지 경찰은 단속 정보를 미리 알려준다고 입을 모았다.

옥해실 재캄보디아 한인회 부회장은 21일(현지시간)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이곳에서 가장 존경받지 못하는 직업이 경찰"이라며 "캄보디아 경찰관 월급이 100만원도 안 되는데 월급보다 더 많은 상납금을 받아 생활한다"고 말했다.

현지 경찰이 대대적으로 범죄 단지를 단속했다며 가끔 보도자료를 배포하지만, 이는 보여주기식 '쇼'라고 옥 부회장은 지적했다.

그는 "캄보디아 경찰에 단속되는 범죄 단지는 평소에 상납을 제대로 안 한 곳"이라며 "큰 범죄 단지는 경찰 윗선까지 연결이 돼 있고, 단속 직전에 미리 다 도주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올해 캄보디아 경찰이 현지에서 최대 범죄 구역으로 꼽힌 '태자(太子) 단지' 내부를 급습했을 때 수천 명의 피의자 대부분은 이미 도주한 상태였다.

만약 한국에서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면 첩보를 입수하고도 제대로 피의자들을 검거하지 못했다고 엄청난 비판이 쏟아질 만한 상황이다.

팡 나렌 캄보디아 온라인스캠대응위(CCOS) 사무차장은 태자 단지를 방문한 한국 정부 관계자와 취재진에 "현지 경찰이 (태자 단지에) 도착하기 전 범죄자들은 이미 도주하고 장비들만 남은 상태였다"며 "비밀스럽게 정보를 조사했는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해명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김병주 최고위원 요청으로 현지 경찰이 한국인 3명을 구출할 때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캄보디아 경찰이 수도 프놈펜에 있는 범죄 단지를 급습할 당시 최소 수백명이 머물던 범죄 단지에 고작 한국인 3명만 남아 있었다.

이들은 구출된 이후 김 위원과 면담에서 "3명씩 쓰는 13층 숙소에 있었는데 밖에서 '우당탕탕'하는 소리가 났다"며 "뭔가 분주하게 짐을 챙기는 듯해 '우리도 나가야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잠시 뒤 온 현지 경찰에 구조됐다"고 말했다.

캄보디아 경찰이 급습하기 전 단속 정보가 새 범죄 단지 운영자들은 먼저 도주한 것이 아닌지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다.

김 의원실 관계자는 "나머지 피의자들은 모두 도주하고 한국인 3명만 남은 상황이 이상하기는 했다"면서도 "캄보디아 경찰이 모든 정보를 공유해 준 것은 아니어서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 '38년 통치' 훈 센 전 총리 측근·친인척 영향력 막강

인권 단체인 국제앰네스티도 지난 6월 보고서에서 캄보디아에 온라인 사기와 보이스피싱 등을 하는 대규모 사기 단지가 53곳이나 있고 3분의 2 이상이 경찰 조사를 받지 않았거나 경찰 개입 이후에도 운영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부 단속이 매우 비효율적"이라며 "이는 경찰관들의 광범위한 부패와 연관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캄보디아는 국제투명성기구(TI)가 지난해 발표한 아시아·태평양 지역 부패인식지수(CPI)에서 21점(100점 만점)을 기록했다. 아시아에서 캄보디아보다 점수가 낮은 국가는 아프가니스탄, 미얀마, 북한 등 3곳뿐이었다.

캄보디아 국민 가운데 지난 1년 동안 경찰관에게 뇌물을 준 비율은 23%에 달했다.

싱크탱크 미국평화연구소(USIP)는 캄보디아의 사기 산업 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에 달하는 125억달러(약 17조7천억 원)가 넘는다고 밝혔다. 사실상 사기 산업이 국가 경제를 떠받치는 상황이다.

국가 전체가 범죄 산업에 의존하는 배경에는 캄보디아에서 절대적으로 권력을 누리는 훈 센 전 총리 가문이 있다는 지적이 있다.

38년 동안 캄보디아를 통치한 훈 센 전 총리의 측근이나 친인척이 아직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범죄 조직과도 연루됐다는 의혹이 나온다.

태자 단지를 운영한 것으로 알려진 프린스그룹의 중국계 천즈 회장도 훈 센 전 총리 고문 출신이며 캄보디아 금융서비스 대기업 후이원(Huione) 그룹의 여러 계열사에 이사로 등재된 훈 토는 훈 마네트 현 총리와 사촌지간이다. 프린스 그룹과 후이원 그룹 모두 최근 미국과 영국 정부에 제재 대상에 올랐다.

훈 센 전 총리는 2023년 장남 훈 마네트에게 총리직을 넘겼지만, 국왕에 이어 국가 의전 서열 2위인 상원의장 자리를 차지했다.

국제앰네스티는 "캄보디아 정부가 범죄 시설이 번창하도록 방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 '코리안 데스크' 거부한 캄보디아 경찰…"민낯 드러날까봐"

한국과 캄보디아 정부는 최근 한국인을 대상으로 납치와 감금 등 사건이 잇따르자 함께 대응하기 위해 테스크포스(TF)를 꾸리기로 하고 '24시간 핫라인'을 구축하는 데 합의했다.

양국 경찰이 수사 과정에서 정보와 증거를 공유하고 범죄에 연루된 한국인을 신속하게 송환하는 방안 등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범죄 단지로부터 상납받고 수시로 단속 정보를 흘리는 현지 경찰과 공조가 제대로 될지는 의문인 상황이다.

캄보디아 경찰은 범죄 단지를 급습하기 전 자체 위원회를 연다. 보통 이 위원회가 열리고 2∼3주가량 지나서 체포 작전을 벌인다. 단속 정보가 새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캄보디아 경찰이 현지 경찰서에서 함께 근무하면서 공조 수사를 하는 '코리안 데스크'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도 부패한 자신들의 민낯이 드러날까 봐 걱정해서라는 것이 교민들 주장이다.

20년 넘게 프놈펜에 산 한 교민은 "현재 한국대사관에서 근무하는 경찰관들은 현지 경찰 내부 속사정까지는 알 수 없다"며 "코리안 데스크는 현지 경찰서에서 함께 일하면서 보고 듣는 것이 많을 수밖에 없어 캄보디아 정부가 거부한 것"이라고 말했다.

옥 부회장은 "태자 단지와 함께 3대 범죄 단지로 꼽히던 망고 단지와 원구 단지도 단속할 때는 범죄자들이 다 빠졌다가 다시 와서 범행하는 식으로 계속 운영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가 이번 기회에 캄보디아 정부에 '피의자든 피해자든 우리 국민은 반드시 데려간다. 수사에 협조하라'고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으면 나중에 이번 사태와 같은 일이 계속 반복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프놈펜=연합뉴스) 손현규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