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악화일로에 동요…때린 미국·못막은 정부에 둘다 증오

대미 보복엔 의견 분분…당국 "큰 피해 없다" 여론 단속 강화

미국이 이란의 핵시설을 공습하며 이스라엘과 이란 충돌에 직접 개입하자 이란 국민들은 충격에 휩싸인 모습이다.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촉발된 무력 충돌이 누그러질 기미 없이 확전 일로를 걸으면서 이란 국민들 사이에는 나라가 또 다시 전쟁의 수렁으로 빠질 수 있다는 불안이 확산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이 이란 핵시설을 공습한 직후 이란 시민들은 NYT와 통화에서 이란의 앞날이 더욱 거대한 불확실성에 휩싸이게 됐다고 호소했다.

수도 테헤란을 떠나 이란 북부 지역에서 피란 중인 페이만(44)은 NYT에 "우리는 모두 충격에 빠져있다. 그 누구도 고작 6∼7일 만에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를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을 경험했다는 그는 자신의 9살짜리 딸이 자신처럼 어린 시절 전쟁의 공포를 겪을까 걱정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머지않아 물과 식량이 다 떨어질까 봐 걱정된다"고 호소했다.

이날 미국의 공습 소식을 접한 이란 시민들은 핵시설 공격으로 이란 국민을 위험에 처하게 한 미국과 더불어 이러한 상황을 막지 못한 자국 정부 모두에 대한 분노, 무력감을 드러냈다.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의사로 일하던 중 테헤란에 방문했다가 현재 발이 묶인 상태라는 파르사 메흐디푸르(29)는 NYT에 "이러한 긴장은 민간인들에게 많은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면서 미국의 핵시설 공습은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며 "이란 국민들에 재앙과 같은 결과를 불러올 수 있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아들과 함께 테헤란을 떠나 아르메니아의 호텔에서 피란 중인 한 여성은 NYT에 이란 시민들은 억압적인 자국 정권과 이란을 공격하는 주변 국가들이라는 두 개의 전선에 갇혀있다고 호소했다.

페이만도 자신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나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모두를 좋아하지 않지만, 전쟁 위기를 초래한 이란 정부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에 미국의 공습을 받은 포르도 핵시설에 이란 정부가 천문학적 비용을 쏟아부은 것에 안타까워하면서 "이 멍청한 정부에 대한 40년에 걸친 증오를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란 정권이 어떤 적도 공격할 수 없는 강한 방어 체계를 가졌다고 큰소리를 쳐놓고 이번 공격을 허용했다면서 그간의 제재로 인한 경제적 피해까지 고려한다면 "우리나라가 치르고 있는 심리적, 재정적, 문화적 비용은 엄청나다"고 말했다.

시민들 사이에 전쟁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지만 이란 당국자들과 국영 언론은 대외적으로 애써 침착한 태도를 유지하며 여론을 관리하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은 이날 공습 피해자들이 치료를 받고 있는 테헤란의 병원을 공개 방문했으며, 도중에 시내에서 열린 반미 집회에 들러 참석자들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이란혁명수비대(IRGC)와 연계된 국영 TV는 미국의 공습을 받은 핵시설들이 큰 피해를 보지 않았다고 전했으며 인근 주민들도 폭발음을 듣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이날 국영TV 방송에는 핵시설 인근 지역 주민들이 평소처럼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도로를 운전하는 등 일상을 사는 모습이 방영됐다.

그러나 NYT와 대화한 복수의 익명 당국자들은 대외적인 입장과 달리 정부 내부에는 미국의 공습을 허용한 것에 대한 패배감과 굴욕감이 감지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미국에 대한 보복 여부와 강도 등을 두고 이란 정치권 내부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고 덧붙였다.

일부 당국자들은 미국 공습 이후 24시간 넘게 아무런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는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에 대해 "그는 어디에 갔는가"라며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고 NYT는 전했다.

(서울=연합뉴스) 임지우 기자 wisefool@yna.co.kr